“왜 나만 나이트가 많아요?” —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 질문

근무표가 나오는 날이면, 병동에는 묘한 긴장이 흐른다고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화면을 조용히 넘기며 한숨을 삼키고, 누군가는 “이번 달도 나만 나이트가 많네” 하는 말을 속으로만 굴립니다. 그리고 정작 그 표를 짠 사람은 — 밤새 미안했다고 합니다. 모두의 사정을 다 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 원망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여기엔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모두가 조금씩 상처받고 있었으니까요.

이건 누구의 악의도 아닙니다

먼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나만 나이트가 많다”는 불만도, “다 못 들어줘 미안하다”는 마음도, 누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병동의 정원은 정해져 있고, 필요한 밤근무(나이트)의 수는 줄지 않습니다. 누군가 낮근무(데이)를 더 가지면 누군가는 나이트를 더 가져야 합니다. 모두의 사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표는, 안타깝지만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진짜 상처는 다른 데 있습니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사실 ‘내 나이트가 많다’는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

**‘왜 그렇게 됐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게 더 아픕니다.

내가 왜 이번 달에 밤을 더 맡게 됐는지, 지난달엔 누가 더 참았는지, 다음엔 내 차례가 오긴 하는지 — 그게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억울해집니다. 표가 캄캄한 상자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질 때, “나만 손해 보는 것 같다”는 마음이 자랍니다.

사람은 불리한 결과도 받아들입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면

오래 지켜보며 얻은 결론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불리한 결과라도, 그 과정이 눈에 보이게 공정하고, 다음이 예측될 때 놀랍도록 잘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번 달은 내가 밤이 많지만, 지난달에 동료가 더 참았던 걸 나도 안다. 그리고 다음엔 내 차례라는 게 보인다.” — 이렇게 되면, 같은 나이트라도 그건 더 이상 억울함이 아니라 납득이 됩니다. 결과를 바꾸지 않아도, 마음이 바뀝니다.

저는 이게 근무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두를 항상 만족시키는 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표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붙드는 원칙

제가 Duti를 만들며 지키려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항상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투명하게, 돌아가며, 그동안 더 참아온 사람에게 먼저. 결과를 억지로 뒤집는 게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가 모두에게 보이게 하는 것.

그러면 표를 받는 선생님은 덜 억울하고, 표를 짜는 선생님은 원망을 혼자 뒤집어쓰지 않아도 됩니다. 공정은, 결국 양쪽 모두를 지켜주는 일이니까요.


혹시 근무표 앞에서 가장 서운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반대로, “이건 그래도 납득이 되더라” 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30분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직접 근무표를 짜 보신 분이라면, 원망을 홀로 지는 그 자리의 이야기를 가장 듣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해 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Duti가 완성되면, 함께 이야기 나눈 선생님들을 가장 먼저 초대할게요. 그 목소리가 제가 가진 가장 귀한 자료입니다.

→ 30분, 이야기 들려주기 (비대면 가능)

📮 · @duti.lab